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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도하는 스승과 제자의 만남
2021년 10월 12일(화) 12:47
코로나19 시대의 만남은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누구인지 분간하기 어려워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냥 지나친다. 해마다 추석을 앞두고 효도하는 후손은 조상의 산소를 찾아가 정성껏 벌초한다.
필자는 추석을 앞둔 일요일에(9월 12일) 고향인 몽탄면의 산소에 찾아가 벌초하고 등산복 차림으로 배낭을 메고 몽탄역(역무원이 없는 무인역)에서 막차를 타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한 젊은이가 서울에 가려고 막차를 탄다면서 동행자가 됐다.
젊은이는 가방도 없이 빈손이었으며 피곤해 보였다. “어르신은 오늘 일요일인데 무슨 일을 하고 가십니까?” ”조상의 산소에 벌초하고 갑니다.” “저도 조상의 산소에 벌초하고 갑니다” “하신 일이 같은 조상에 효도하는 일이구먼요”
“어르신은 올해 연세가 몇 세입니까?” “83세입니다” “71세인 저도 예초기로 벌초하는 일이 힘들었는데 어르신은 아주 힘드셨지요?” “저는 일하는 즐거움으로 살기 때문에 예초기로 힘든지 모르고 일을 했습니다.” “대단하십니다.” “어르신은 고향이 어디 십니까?” “ 몽탄면 사천리입니다” “저는 고향이 몽탄면 내리 남천입니다.” “사천리가 고향이시다면 혹시 정기연 선생님을 아십니까?” “제가 정기연입니다.” “저는 선생님의 제자 서경옥입니다”라며 정중하게 절을 하고 필자를 껴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1960년대 필자가 몽탄초등학교 교사로 근무 중 6학년 때 담임한 제자 서경옥을 56년 만에 만난 것이다. 그것도 두 사람이 다 조상의 산소에 벌초하고 가는 효성스러운 일을 하고 가는 작업복 차림의 만남이다. “선생님 얼굴이 보고 싶습니다.” “코로나 시대에 마스크를 썼으니 명함에 있는 사진으로 보시게” 하며 사진이 들어 있는 명함을 주었더니 명함의 사진을 보고 감격하며 필자를 껴안고 울었다.
몽탄역에 오후 6시 51분 막차가 도착해 승차한 후 자리를 같이하며 경옥이의 지난날 살아온 이야기를 들었다. 서경옥은 목포에 있는 중학교에 진학했으며 부친의 직장 따라 서울로 이사 가서 서울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 복무 중 부친이 46세로 별세했으며 제대 후 경찰시험에 합격해 경감으로 정년 퇴임을 하고 지금은 제2의 직장을 선택해 근무한다 했다. 서울에서 살고 있지만, 해마다 추석을 앞두고 고향에 와서 산소에 벌초하고 가는 효성스러운 제자가 자랑스러웠다.
경옥의 이야기를 듣고 그동안 필자가 살아온 이야기를 했다. 필자는 서경옥이 졸업한 65년도에 현경초교로 전근했고, 70년도에 광주시로 전근했으며 광주에서 10년 근무를 마치고 80년도에 신안군으로, 거기에서 교감 승진해 84년도에 영암군으로, 완도군으로, 나주시로 나주시에서 교장으로 승진했다. 여수시 소라서초교 교장으로 여수시에서 영암군 신북남, 신북초교로 거기에서 곡성 오산초교로 전근해 2001년에 43년의 교직을 마치고 정년 퇴임했으며, 그 후 호남 직업학교에 입합해 6년간 직업교육을 받았다.
실버넷뉴스를 비롯한 전광일보, 전남도민일보, 대한일보, 전광투데이 광주전남 뉴스 기자 논설위원 주필로 글을 쓰면서 현재는 연간 200여 편의 칼럼을 쓰고 있으며, 일하는 즐거움으로 고향 몽탄면에 가서 유실수를 가꾸고 있다고 설명했다.
송정리역에서 하차해 인근에 있는 전주식당으로 갔다. 식당의 전문 메뉴인 소머리 국밥 주문을 해 놓고 마스크를 벗은 얼굴로 스승과 제자는 대면했다. “정기연 담임선생님 반갑습니다” “경옥아, 반갑다!” 서경옥은 필자를 껴안으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초등학교 때도 키가 컸는데 어른이 돼서도 키가 크고 건강한 사람이었다. 식당 벽에는 수많은 사람이 식객으로 다녀간 표시로 사인을 했는데 김대중, 나훈아, 황석영 등 많은 사람의 사인이 벽을 메웠다.
음식 주문을 해 놓고 경옥은 잠깐 다녀올 데가 있다며 밖에 나갔다가 와서 주문한 소머리 국밥을 같이 맛있게 먹었다. 오랜만에 스승과 제자가 만나 먹는 음식이다. 식사가 끝난 후 경옥은 밤 9시 KTX 열차를 타고 가야 하는데 먼저 선생님을 전송한다며 지하철 에스컬레이터 입구에서 헤어졌다. 경옥은 이별의 악수를 하며 내 손에 구겨진 돈을 쥐어 주었다. “카드만 있고 현찰이 없어 현찰 돈을 빼려고 갔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스승님께 대접을 못 해 선물값으로 드립니다. 건강하게 오래 사십시오. 선생님!"
지하철 열차를 타고 가면서 손에 든 돈을 펴 보니 1만 원 권 지폐가 열 장 들어 있었다. 마스크를 쓰고 사는 코로나 19시대에 효도하는 제자와 스승의 만남은 자랑스러운 보람이었다.
/정기연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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