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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향 장기수' 서옥렬씨 민족통일장 영결식
2019년 09월 14일(토) 21:19
14일 오후 광주 동구 문빈정사 극락전 앞에서 비전향 장기수 서옥렬씨의 영결식이 열리고 있다.
[전남도민일보] 광주·전남지역에서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비전향 장기수 고(故) 서옥렬씨의 영결식이 14일 광주 동구 문빈정사 극락전 앞에서 엄수됐다.

비전향 장기수로 가족이 없는 서씨의 영결식은 시민사회단체의 민족통일장으로 치러졌다.

장례위원장을 맡은 김정길 6·15 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광주전남본부 상임대표는 조사를 통해 "지척에 두고도 가지 못하는 그곳을 그리며 얼마나 많은 통곡을 하셨느냐"며 "당신의 통곡은 분단 조국의 통곡이며 당신의 분노는 냉전 시대에 사는 모든 이들의 분노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상임대표는 이어 "이제 우리는 통곡을 멈추고 분노의 열정을 새로운 희망으로 바꾸려 한다"며 "모든 사람이 함께 사는 세상, 더불어 사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신안 출신인 서씨는 고려대 경제학과에 재학 중이던 1950년 6·25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학도병으로 북한 인민군에 편입돼 참전했다.

휴전 뒤 북한에서 생활한 서씨는 1961년 부인과 자녀를 두고 고향으로 내려와 가족들과 만남을 가진 뒤, 다시 월북을 시도하다 해병대 초소에서 체포됐다.

그는 동생들을 포섭하고 정보 수집 등 첩보 활동을 한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1심에서 사형을 언도받았지만,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돼 1990년까지 29년 동안 복역했다.

1993년 비전향 장기수 이인모(2007년 사망 당시 90세)씨의 송환 이후 2000년 비전향 장기수 63명이 송환됐으나 서씨는 전향수로 분류돼 북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참여정부 시절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강압과 고문에 의한 전향은 무효'라는 판단을 내리면서 서씨 등 북송을 희망하는 비전향 장기수 27명은 시민사회와 함께 지속적으로 송환을 요구해왔었다.

노환으로 건강 상태가 나빠진 서씨는 지난 11일 향년 92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기자이름 /김태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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